• 관리자
  • 작성일 2020년 08월 20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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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없어도 열정이 있다! 청년 도시농부의 노빈손 프로젝트 1탄

민들레 홀씨처럼 다가온 경작본능이 싹트다

 


 

‘먹이를 찾아 학교를 어슬렁거리는 복학생들을 본 일이 있는가? 재밌는 것을 찾아다니는 학교에 복학생, 나는 꼰대 복학생이 아니라 센스 있는 선배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농사와 관련 없는 집안에서 군대에서 농사바람이 불어 대학교 안에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농사를 접한 것은 군대 안이다. 군대 생활을 헌병대에서 하게 되었다. 역할은 군수사관님과 파트너를 이뤄 수사 활동을 했다. 그 수사관 반장님은 정년에 몇 년 남지 않아 귀농귀촌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러다보니 어깨 넘어 농사짓는 방법, 씨앗과 모종을 심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되었고 일부를 얻어 군부대에 안에서 심었던 것이 마음속에 경작본능을 싹트게 한 것 같다.

 

그렇게 군복무가 끝나고 학교 복학을 앞둔 청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퍼스의 로망으로 동아리활동이나 스터디모임 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신입생을 위한 활동이지 복학생을 찾는 곳은 없었다. 똑같은 등록금을 내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지 않은가! 안받아주면 내가 만들어야지 하면서 어떤 일을 해볼까 찾던 중 흥미를 느꼈던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 땅이 없으니 넓은 학교를 이용하고 농사 계획을 짜보았다. 그렇게 나의 경작본능을 깨울 터는 학교 안에서 시작되었다.



 

수상한 학생들

 

한국인은 장비빨(?)이라는 말처럼 시장에서 삽부터 하나 사서 미리 찜해놓았던 학교 공터로 향했다. 같은 과 동기와 공터에 땅을 뒤집고, 쓰레기와 풀을 제거하고 두둑을 만들었다. 두둑이라기보다는 누가 봐도 무덤 같았다. 일단 밭부터 만들고 시장에 모종상, 농약상을 다니며 무엇을 심어야할지, 시기는 언제부터인지 조사를 하고 틈만 나면 묻고 구매했다. 그렇게 첫 작물을 심을 때가 되어 가장 쉽다는 상추부터 시작했다. 아직도 그 상추를 잊지 못한다. 무작정 심고난 상추가 처음에는 시들시들하다가 옆에 벚꽃나무의 벚꽃잎이 떨어지며 푸릇하게 살아난 상추의 모습을. 어여쁜 여인이 꽃을 들고 있는 모습 같아 보였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작물들은 하나하나 늘려가고 밭은 점점 넓혀갔다. 우리의 놀이터는 작물도, 밭도, 함께하는 친구들도 늘어가면서 주위 관심도 많이 받게 되었다. 위치상으로도 강의실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라 우리에게도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상한 학생들의 활동은 점차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관심이 많아지니 문제도 생겼다. 학교 시설과에서 학교 안에서 경작활동을 하지 말라며 모두 치우겠다는 것이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 아니 작은 화분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 못하는 식물일지라도 정말 가족 같은 존재이다. 심지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까워 나눔을 하는 이 작물들을 모두 치운다니 분노에 가득 찼다. 결국 시설과 담당자와 만나 큰소리쳤다. ‘내가 학교로부터 1원 한 푼 받는 것도 없고 오히려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데 학교 공간을 왜 이용하지 못하느냐’며 따지기 시작했지만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언론사를 찾아 ‘바람직한 취미활동을 막는 대학교’라는 주제로 억울함을 여기저기 호소하였고 우리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 수상한 학생들의 사연은 널리 알게 되고, 시설과에서는 우리 밭만 놔두고 남은 공간에 풀을 깎아주셨다. 승리에 벅찬 우리는 더 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농사 욕심은 끝이 없다

 

텃밭에는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전에 모든 대학에 텃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학교마다 작은 텃밭을 모여 대학농부들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아무래도 신규 텃밭은 이미 겪은 실수와 기술력이 부족하여 서로 의견을 나누기에 다른 차이가 있었다. 마치 같은 동네라도 같은 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것이 다 다르듯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한 곳으로 모이기로 했다. 대전에는 충남대에 농대가 있어 농지를 갖고 있다. 무작정 농과대학 교수님들을 찾아가 농지를 빌리기 시작했고 한 교수님께서 농지를 빌려주셨다. 100여 평정도로 우리에게 큰 땅이었다. 그렇게 텃밭에 무엇을 심을 건지 계획도 잡고 봄부터 하나하나 심기 채워나갔다. 우리는 농사 기술도 배우고 매주 모이며 공동체도 배워나가고 있었다. 도시 텃밭에는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공생하며 자연을 가르침을 받는 훌륭한 학습장이었다. 이런 활동으로 회원 20여명이 매주 토요일마다 모였고, 이렇게 우리만 알기 아까워 지역아동센터에 우리들의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텃밭을 설치하고 매주 금요일마다 교육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이었고 누가 준 돈도 아니고 스스로 시간과 노동을 하고 판매 수익과 회비로 동아리활동을 번창시켰다.

 

여기서 또 다른 싹이 튼다. 우리 이것으로 먹고 살아볼까? 학교를 벗어나 사회라는 터로 옮겨 싹을 띄워보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백종운 사회적농업 손수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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